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익(李炳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8064
  • 전몰일자 : 19510909

공훈사항

이병익 일병은 경상북도 칠곡군 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1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진을 계속하던 국군과 유엔군이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38도선으로 철수 중인 상황이었다. 이에 제5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38도선 상의 탑두울-배후령 간의 진지에 투입되어 철수하는 아군을 엄호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12월 31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1951년 들어 실시된 제4차 공세(2월 공세), 제5차 공세(4월 및 5월 공세)를 맞아 문막, 단양, 제천, 홍천, 인제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공격, 철수, 방어 전투를 반복했다. 사단은 부대가 포위되어 궤멸될 위기를 여러 번 맞기도 했으나, 탈출과 재집결을 거치면서 홍천 부근 어론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사단은 1951년 5월 하순 소양강 동쪽에 배치되어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연하는 新 캔자스선을 향해 공격작전을 펼쳤다. 이때 이 일병이 소속된 제27연대는 사단의 좌전방 연대로서 서화리-원통 간 도로 우측의 명당산-피양동-서화리-987고지 방향으로 공격했다. 연대는 명당산에서 연이틀 계속해서 적의 선제 기습공격을 받았으나 치열한 격전 끝에 이를 격퇴했다. 그 이후 연대는 7월 말까지 新 캔자스선 상에서 진지를 강화하는 한편, 소규모 전투와 전투정찰, 매복 작전 등을 수행하면서 적과 대치했다.
이후 제5사단은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었다. 군단은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 작전을 실시했다. 이때 사단은 9월 5일 제27연대를 주력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9월 9일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를 점령했으나 적의 역습을 받고 가칠봉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1,211고지를 향해 돌격하던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0판-4면-15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6-ㄱ-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