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익(李炳翼)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0219481
  • 전몰일자 : 19530520

공훈사항

이병익 이등상사는 1930년 8월 10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총공세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12월 17일, 육군에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익 이등상사가 부대로 전입했을 때인 1951년 10월 하순, 제2사단은 금성-금화 진격전투로 적근산 북쪽 기슭의 522고지-477고지-하진현을 잇는 선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사단은 1952년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부터 배속해제 되어 사창리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이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군단 예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6월 30일부로 미 제40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주저항선에 배치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면서, 제32연대는 진지보강과 수색 및 매복작전에 집중했다. 그런데 공산군은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이에 유엔군사령관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산군에게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전 부대에 방어진지 전방지역에 대한 공격작전을 실시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은 10월 14일에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580고지)을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하기로 하고, 제17연대와 제32연대가 교대로 공격했다. 저격능선은 오성산을 지키는데 매우 중요한 지형으로서 공산군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었다. 이병익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첫날 공격에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아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후 중공군의 즉각적인 역습으로 다시 빼앗기고, 그리고 다시 빼앗는 치열한 전투가 42일 동안 계속되었다. 벌써 피아간에는 수차례 공방전이 있었다. 제32연대는 11월 24일에 빼앗겼던 저격능선을 되찾기 위해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날 전투에서 이병익 이등상사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서울 소격동에 위치한 제36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곳 병원에서 의료진들에 의해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953년 5월 20일에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익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8-ㄲ-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