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이(李炳珥)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2756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병이 대위는 1928년 7월 27일 경상북도 대구시 동구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육군에 입대하여 하사관으로 근무하다, 장교가 되기 위해 1948년 11월 21일 육군사관학교 제7기로 입교했다. 이 대위는 4주간의 단기 교육을 받고 동년 12월 21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3여단에 배치되어 복무하다, 사단 공병대대가 창설될 때 동 대대로 전속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사단은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었고, 7월 1일부터 8월 16일까지 울진, 영해, 영덕 일대에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하다, 17일 장사동에서 해상철수를 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사단은 8월 20일 다시 전투에 투입되어 포항과 형산강 변 일대에서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후 이 대위와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진격했고 10월 10일 원산을, 11월 25일 백암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 묵호,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사단은 적의 공격에 맞서 횡성, 제천, 원주, 하진부리, 현리 일대를 오르내리며 치열한 공방전을 치른 끝에 1951년 3월 하순 38도선 상의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4월에는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를 맞아 인제의 한계리, 한석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하자, 장병들은 방태산으로 후퇴하여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대위는 공병대대 중대장으로서 병사들을 독려하며 오미재 고개에 설치된 적 장애물을 개척하기 위해 분전하다 적탄에 맞아 5월 1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이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ㅊ-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