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율(李秉律)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10942
  • 전몰일자 : 19530714

공훈사항

이병율 일병은 1923년 9월 10일 경상남도 양산군 원동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10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병율 일병은 전선에 투입되어 연대병력과 16일부터 북쪽으로 추격해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했고, 10일 원산을 점령하였다. 이어 북한군이 11월 말 길주에서 반격해 오자,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12월 14일 흥남으로 철수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17일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이병율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1년 2월부터 4월까지 삼척-강릉-속사리-남가리-설악산 일대까지 진격하면서 강릉지구전투와 오대산전투를 실시하였다. 이어 양양전투를 수행한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설악산지구전투와 5월 18일부터 25일까지 대관령 방어 작전 등으로 북한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1951년 5월 말 제26연대를 향로봉-건봉령에 배치한 후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진지 공사에 주력하면서 전방 지역에 대한 위력수색을 실시하였다. 1952년 7~10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의 공방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했으며 11월 3일부터 9주간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마친 후 연대는 강원도 사창리로 이동해 1953년 1월~7월 김화 동북지역의 금성전투에 참여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으며 5월 23~24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한편 중공군의 최후 공세가 1953년 7월 13일 야간에 시작되었다. 중공군은 포병사격을 맹렬히 가하면서 사단 방어지역으로 일제히 공격하였다. 연대병력은 13일 자정경 전방 진지가 유린 되고 14일 새벽에는 전방대대 관측소가 북한군에게 공격을 받음으로써 주저항선이 붕괴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이 능선을 점령하여 새 주저항선을 구축하는 한편 미처 철수하지 못한 사단 병력을 구출하였다. 그러던 과정에서 이병율 일병은 1953년 7월 14일 북한군의 포탄을 받아 김화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율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9901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7-ㅊ-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