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원(李炳元)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805109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병원 하사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 활동으로 사회가 혼란스럽던 1949년 7월 중순에 서울 용산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동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제2연대로부터 38도선 경계임무를 인수했다.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싸웠으나, 더는 옹진반도를 지탱하지 못하고 6월 26일 아침에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대전에서 육본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오산 북쪽의 갈곶리에 배치되어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보은-상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고, 8월 중순에는 포항지구전투사에 배속되어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어 9월 12일까지 북한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격퇴했다.
이병원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육군 중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어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연대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했고, 이어 열차로 영등포까지 이동한 후 하차하여 신사리까지 기동했다. 그리고 9월 25일에 한강을 도하하여 남산을 탈환한 후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그리고 11월 7일에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 연대는 제2사단에 예속되었다. 사단은 포천-철원-평강 일대에서 유엔군의 후방지역을 교란하던 북한군 패잔병들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되어 많은 전과를 올렸다.
국군과 유엔군은 11월 하순에 압록강까지 북진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보고 다시 38도선 일대로 철수했다. 이때 제2사단은 양문리-탑두울 지역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950년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주저항선이 돌파되어 후방으로 철수했다. 당시 이병원 하사가 소속된 제2사단 장병들은 1951년 1월 1일 야간에 방어지역에서 철수하여 후방을 차단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며 후방으로 이동했다. 이날 그는 분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철수하다가 도로를 차단하고 있던 중공군과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원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8-ㄴ-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