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원(李秉元)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271
  • 전몰일자 : 19500801

공훈사항

이병원 일병은 경상북도 금릉군 감문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후퇴함 거듭하던 7월 하순, 대구에 설치된 경북편성관구사령부에 입대하여 제5교육대에서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이곳에서 편성된 기동타격대 임무를 수행했다(육군 제1훈련소의 전신).
한편, 육군본부는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병력 확보와 각 지역 방위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7월 초순 각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가 대구에서 창설되었다. 그리고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며, 7월 16일부로 각 편성관구사령부 예하에서 무기와 장비 보충이 없는 상태에서 신편(신병 모집) 중이던 연대들을 신병교육대로 개칭했다. 이에 따라 전남편성관구사령부 예하 제15연대가 제5교육대로 개칭되어 광주에서 대구로 이동하여 경북편성관구사령부 통제를 받게 되었다.
이병원 일병이 입대할 당시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소백산맥 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자 낙동강 선에서 최후방어전을 펼치고자 했다. 유엔군은 7월 말에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명령했다. 이처럼 전선이 남하함에 따라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정찰대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경북편성관구사령부는 교육 중인 신병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북한군 정찰대에 대응해왔다. 8월 1일 대구 시내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이병원 일병이 소속된 기동타격대원들은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 투입되어 격멸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소탕작전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기습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원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0판-1면-16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0-ㅇ-08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