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원(이병원)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7903809
  • 전몰일자 : 19510211

공훈사항

이병원 이등중사는 출생 일자 및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이등중사는 1950년 8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입대할 당시 제8사단은 영천지역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 후 반격 준비를 마친 국군과 함께 1950년 9월에 진격을 하여 10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0월 8일 38도선을 통과하여 북한지역 깊숙이 진출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지연전을 펼치며 적의 남하를 저지하게 되었다.
제8사단은 중공군의 제1차 공세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계획에 따라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계획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병력이 계속해서 증강됨에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하여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했다. 이어서 제8사단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520고지의 점령을 위해 연천에 집결해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했다. 하지만 중공군에 비해 열세한 화력과 적군의 우회 침입 작전에 직면하여 위기에 놓였으나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 데 성공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적군을 대적했으며,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 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혹한에서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다.
아군은 전력을 가다듬어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지만 홍천군 삼마치 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했다.
이후 국군은 5일간 제병협동작전을 실시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특히 제8사단의 피해가 컸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1951년 2월 11일 강원도 횡성군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원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7면-357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ㅋ-08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