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운(李炳云)

  • 군별 : 해병
  • 계급 : 하사
  • 군번 : 9022601
  • 전몰일자 : 19530620

공훈사항

이병운 하사는 경남 밀양군 산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1년 1월 23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1951년 4월 20일 해병대 제5대대(1952년 10월 1일부터 해병대 제1전투단에 예속)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해병대는 화천지구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 6월 1일까지 화천지구에서 전투를 수행한 연대는 도솔산지구로 기동했다. 도솔산지구는 양구와 인제 사이에 있는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곳으로 일찍이 유엔군이나 한국군이 한 번도 진격하지 못한 천연적 요새였다. 연대는 6월 4일부터 6월 19일까지 치열한 공방전 끝에 24개 목표를 모두 점령했다. 난공불락의 요새인 도솔산고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이승만 대통령은 도솔산의 해병대부대를 방문하여 ‘무적해병’이라는 휘호를 하사했다.
그 후 해병대는 대우산지구 전투(1951.7.8.-7.17.), 924고지(김일성고지)·1,026고지(모택동고지) 전투(1951.8.31.-9.3.), 월산령지구 방어작전(1951.9.5.-1952.3.17.)을 수행했다. 월산령지구 방어작전 후 해병대는 서부전선인 장단·사천강지구로 기동했다.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장단·사천강 지구는 경기도 문산과 파주에 접해 있고 서울과 이어져 있어서 서울의 관문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한 곳으로 1952년 4월부터 전초진지를 두고 피·아 간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계속 반복되었다.
우기인 7월과 8월은 사천강 수위의 변동이 잦아서 피·아 간 작전은 제한적으로만 실시되었다. 7·8월 장마철이 지나자 정찰활동과 기습공격, 포격전이 연일 계속되었다. 해병대가 점령하고 있던 전초진지 일대는 155고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발 50m 미만의 구릉과 전답으로 된 개활지이며, 적의 감제하에 있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형이었다. 적은 해병대가 점령하고 있던 전초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수시로 공격을 시도했으며, 피·아 간 공방전은 1953년 6월까지 계속되었다.
6월 20일 적은 50전초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이날 이 하사는 적을 격퇴하기 위해 분대를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운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ㅈ-09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