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운(李炳雲)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7312
  • 전몰일자 : 19510127

공훈사항

이병운 일병은 1933년 4월 17일 경기도 부천군 계양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2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 훈련을 수료한 후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병운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 전선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전투를 수행하면서 축차적으로 지연작전을 실시하여 1950년 7월부터는 낙동강선 방어 작전에 돌입하였다.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이 일병과 장병들은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공세로 전환한 후 북진작전에 돌입함으로써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해 한・만 국경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1950년 10월 25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밀린 이 일병과 장병들은 평택-제천-삼척을 연하는 선까지 철수하였으나, 제2차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38선 부근까지 진격하였다. 이후 몇 차례의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와 일부병력은 불법 개입한 중공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 38도선 이남으로 다시 철수하게 되었으며, 1951년 휴전회담이 진행되기 직전까지 북한군과 몇 차례의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전선이 교착상태에 접어들자, 양측은 주요 고지를 놓고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전개하였다.
이 일병이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하였다. 그는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북한군과 싸웠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을 방어하던 이병운 일병은 중공군의 공세에 따른 방어 작전에 참여하여 임무를 수행하다 1951년 1월 27일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5-ㄱ-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