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욱(이병욱)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80878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이병욱 하사는 1933년 2월 10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욱 하사가 전선에 배치될 당시 기갑연대는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신정 공세를 받았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도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군의 전반적인 전선 조정에 따라 남쪽으로 철수하여 1951년 1월 10일경에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공격연대는 2월 5일 구산리와 강릉을 목표로 총공세를 개시하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목표탈취를 못하고 다음 날 공격을 재개하여 2월 7일 강릉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다시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2월 25일 중공군의 저항이 경미하자 신속히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어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5일간이나 계속된 폭설로 인하여 대관령-횡계리-구산리 간의 도로가 차단됨으로써 공격이 지연되었고 3월 1일에 이르러서야 경강국도를 중심으로 현리-양양을 연하는 카이로선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어 4월 15일 재반격을 개시한 이병욱 하사와 연대병력은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였으며, 적의 보급 및 병력의 집결지로 판단되는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양양전투를 수행한 이병욱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설악산지구전투로 북한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인한 영향과 식량과 탄약의 부족 등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이 하사와 장병들의 공격은 좌절되기 일쑤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병욱 하사는 1951년 5월 17일 치열한 백병전을 펼치던 중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설악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욱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14면-875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ㅇ-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