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욱(李秉郁)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40164
  • 전몰일자 : 19500817

공훈사항

이병욱 상병은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소백산맥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1950년 7월 중순 제25연대(교육연대)에 입대했다. 이 상병은 간단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1훈련소 조교로 배치되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중순 각 편성관구사령부 예하에서 무기와 장비 보충이 없는 상태에서 신편(신병 모집) 중이던 연대들을 7월 16일부로 신병교육대로 개칭했다. 그리고 이들 신병교육대를 통합할 신병훈련소 창설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950년 7월 11일 제1훈련소의 모체가 된 제25연대(교육연대)가 대구에서 창설되어 동년 7월 17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예하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가, 8월 1일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다. 이는 동년 8월 14일부로 국본 일반명령 제46호에 의거 육군본부 직할로 육군 제1훈련소로 개칭(창설)되었다.
이 상병이 입대할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소백산맥 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자 낙동강 선에서 최후방어전을 펼치고자 했다. 유엔군은 8월 1일부로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방어에 임했다. 8월 중순 전선이 왜관-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을 잇는 대구 북방에 형성됨으로써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좌익 게릴라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대구에는 정부기관, 육군본부, 미 제8군사령부 등 다양한 기관(부대)들이 밀집되어 있어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24일 제2사단을 해체하면서 육본 직할로 대구방위사령부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 사령부는 기구만 설치되었지, 실질적인 병력이 없었기에 대구 방어를 위해서는 각 도에서 집결한 경찰병력, 청년방위대, 후방병력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1훈련소의 교관·조교, 신병들도 기동타격대에 포함되었다. 8월 17일 대구 시내에 적 게릴라들이 출현했고, 이 상병과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 상병은 적 게릴라들과 조우하여 교전 중에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욱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1-ㄹ-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