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욱(李炳旭)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2347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병욱 대위는 1925년 9월 20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험난한 격동기에 청년기를 맞아 조국을 지키는 간성이 되고자 군문을 두드렸다. 1948년 10월 초순에 통신 제2기로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48년 12월 21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그는 서울 영등포에 설치된 통신학교에서 주특기 교육을 수료함으로써 통신장교로서 전문지식과 기술을 취득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병욱 대위가 중대장으로 부임하여 제1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수색(현 서울시 은평구) 및 제1사단의 책임지역인 개성과 임진강 일대에서 38도선의 방어력 증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던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이병욱 대위는 비상경계령이 해제된 가운데 모처럼의 일요일 휴일을 갖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비상소집에 따라 이 대위는 즉각 전투에 투입할 준비를 갖추었다. 육군본부는 수도권 인근의 부대는 물론 후방지역의 부대까지 모조리 서울 북쪽의 방어에 투입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병욱 대위가 지휘하는 통신대는 통신지원을 위해 부대원들과 함께 개성 방향의 진지에 투입되었다. 개성-문산-서울에 이르는 축선에서는 국군 제1사단이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약 94km에 달하는 광대한 정면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병욱 대위가 지휘하는 중대는 청단-대원리에 배치되어 38도선 경계를 하다가 적이 공격을 해오면, 광적면이라는 취약점 때문에 임진강 남안으로 철수하여 문산-적성 간의 준비된 전방 방어진지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적의 강력한 기습공격을 받고 38도 분계선은 초전에 각개 격파되고 개성은 적에게 점령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손실을 입은 연대병력은 장단-문산 방향과 영정포-김포반도로 철수하고 일부는 퇴로가 차단되어 서해로 빠져나가야 했다.
이병욱 대위가 지휘하는 통신대는 통신지원은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이미 북한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장병들과 함께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50년 6월 25일 문산 일대에서 철수하는 도중에 적의 습격을 받고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욱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2판-1면-28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9-ㄷ-08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