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우(李炳佑)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9589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병우 일병은 경기도(現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던 1950년 8월 하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포병교육대대에서 포병 주특기 교육을 받고 자대로 충원되어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포병은 1948년 6월 26일 서울 용산에 제2포병훈련학교를, 경남 진해에 제3포병훈련학교를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1월 20일 제2,3포병훈련학교를 해체하고 육군 잠정포병단을 설치하여 그 밑에 육군포병학교를 두었다. 포병단은 12월 15일 육군잠정포병사령부로 개칭되었고, 이는 1949년 6월 20일 다시 육군 포병연대로 개편되었으며, 포병연대는 동년 10월 15일 육군포병학교로 개칭되었다. 6·25전쟁 발발 후 포병학교는 해체되고 1950년 7월 3일 창설된 제1포병단을 9월 10일 부로 포병교육대대로 개칭하여 포병부대 장병을 육성하는데 전념했다.
이병우 일병이 훈련소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포병교육대대는 확장되는 포병 육성 및 신병교육에 주력했다.
이후 1950년 12월 2일 육군포병교육대대를 육군포병훈련소로 개칭하여 12월 22일 경상남도 진해로 이전했다. 포병훈련소는 1951년 3월 10일부로 육군포병학교로 재차 개칭되어 육군본부에 예속되었다. 3월 20일에는 포병중대를 포병대로 개칭하였고 이후 포대로 개칭했다. 계속해서 포병은 화력증강을 위하여 3월 30일 독립포병 제1, 2, 3포대를 독립포병 제81, 82, 83포대로 개칭했다, 4월 29일에 독립포병 제109, 110포대와 독립포병 제86, 88포대를 창설했다. 이어서 5월 27일에는 독립포병 제111포대를 창설하여 기동부대 화력지원에 운용되었다.
이때 이병우 일병은 포병학교에서 독립포병 제86대대로 전속되어 제2포대 제3포반 사수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공세작전 작전에 참가하여 기동부대의 화력지원에 주력하다가 포상으로 기습 침투한 적 정찰대와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1판-4면-22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ㅁ-06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