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용(이병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200886
  • 전몰일자 : 19500816

공훈사항

이병용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만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이병용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수도사단은 제1연대와 제18연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사단은 미군이 방어하고 있던 금강선과 대평리 선이 위태롭고 또 청주 국사봉 방어선이 언제 돌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7월 17일 보은을 거쳐 20일 안동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 북쪽에서 계속 공격해오자, 이 일병과 장병들은 8월 1일 안동 북쪽 일대에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하였으며 8월 3일 길안과 청송 일대에 새방어선을 설정해 이곳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8월 5일부터 적의 대규모 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때 이 일병과 장병들은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다음날까지 구수동을 경유하여 의성 일대로 다시 철수하였다. 사단 병력이 의성으로 철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청송-기계 축선이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9일 기계를 점령한 후 포항으로 전진할 때까지 거의 저항을 받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보현산 일대에 침투한 제766부대와 연결을 지으면서 전차 및 지원포병으로 증강된 1개 연대 규모의 병력을 투입하고 주력을 후속시키고 있었다. 이병용 일병과 일부 병력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기계를 탈환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병용 일병은 1950년 8월 16일 기계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용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95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ㅌ-01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