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용(이병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005
  • 전몰일자 : 19520607

공훈사항

이병용 일병은 경상북도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1951년 3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15경비대대에 배치되었다. 제15경비대대는 후방지역에서의 공비토벌과 보급로 확보, 포로경비 등을 위해 1951년 4월 20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창설되었다.
유엔군이 북진하자 북한군은 미처 후퇴하지 못한 패잔병들과 좌익 세력들을 규합하여 여러 개의 게릴라부대들을 조직하여 제2전선을 형성하도록 했다. 이들 부대들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선으로 내려오자 그들의 전선타격부대와 호응하여 유엔군의 후방을 더욱 적극적으로 교란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1950년 10월부터 1951년 4월까지 제11·8·2사단을 투입하여 게릴라 토벌작전을 전개했고, 경비대대들이 배속되어 작전을 함께 했다.
이후 제15경비대대는 육군 예비로 운용되다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철원, 화천 일대의 후방지역 작전을 담당했다. 대대는 수색정찰, 매복작전 등을 통하여 침투하는 적을 색출 격멸함으로써 군단의 작전에 기여했다.
1951년 9월 제15경비대대는 태백산 일대에서 준동하는 게릴라 토벌을 위해 출동했다. 적 게릴라들은 1950년 말부터 동부 산악지역으로 침투했던 북한군 제10사단 패잔병들과 이현상의 남부군, 그리고 경북도당과 지역군당 게릴라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국군 제3군단과 제2사단의 토벌작전에도 불구하고 일부 잔당들이 남아 후방교란작전을 지속하고 있었다. 제15경비대대는 작전지역에 도착과 동시에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은 이 토벌작전에 앞장섬으로써 작전의 성공에 기여했으나, 1952년 6월 7일 수색작전 중에 적의 기습을 받고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용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6-ㄱ-10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