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옥(李秉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27895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이병옥 하사는 1922년 7월 26일 경상북도 금릉군 봉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10월 19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본직할 제51통신대대에 배치되었다가, 동년 12월 초순경 제7사단 통신중대로 전속되었다.
이 하사가 사단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묘향산으로 진격하다 중공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중순경 38도선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방어 준비 중이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은 제3차 공세 때 사단은 영월 북서방으로 후퇴했고, 이 일대에서 북한군 제2군단의 침투부대들을 섬멸했다. 그리고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지켜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사단은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고, 리퍼작전(3. 7.~3. 31.) 때는 평창군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미 제8군은 5월 7일 홍천-인제-간성 간 도로를 확보할 목적으로, 그 북쪽의 10~25km를 잇는 미주리 선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고, 이때 사단은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확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소양강 남쪽의 정자리 일대에 배치된 사단은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부대 기동이 잦은 상황에서 지휘통신을 유지한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 하사는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해 왔다. 그는 이 전투에서 적의 포격으로 통신선이 절단되자 이를 연결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적의 습격을 받아 5월 17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옥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2-ㅅ-05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