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옥(李炳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6801146
  • 전몰일자 : 19500629

공훈사항

이병옥 하사는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7월 13일 제3사단 제22연대에 입대했다. 이 하사가 입대할 무렵 북한은 남한 사회의 혼란을 일으키고 장차 제2전선을 형성할 목적으로 유격대를 남파하고 있었다.
유격대는 1948년 11월부터 1950년 3월까지 10차에 걸쳐 남파되었으며, 그중 일부가 경북 일대까지 침투하여 일월산, 보현산 등지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습격, 파괴활동을 일삼았다. 제22연대는 토벌부대로 투입되었고, 이 하사는 1950년 3월까지 이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는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6월 25일 오후 제23연대의 대전차포중대 및 2개의 중화기중대를 대동하고 대구에서 이동하여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27일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봉일천 지구의 제1사단을 증원하고, 제3대대는 김포로 출동하여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었다.
봉일천 지역의 공격을 담당한 북한군은 제1사단 제2연대와 제3연대로서, 제2연대는 1개 전차중대와 자주포 포대로 편제되었고, 제3연대는 전차 1개 대대와 자주포 대대로 구성되어 보·전·포 협동공격을 시도했다. 6월 26일 야간에 임진강 방어선으로부터 철수한 제1사단 예하 부대들은 27일 아침 봉일천 전방의 방어선을 점령했다.
연대(-)는 27일 11시 30분경 고양군 신도면 일대의 고지군에 배치되었다. 그날 밤 연대 정면까지 도달한 북한군 제1사단은 밤 11시경 연대진지를 야습했고, 연대 장병들은 28일 아침 5시경까지 치열한 교전을 벌이면서 진지를 지켜냈다. 그런데 28일 새벽에 적이 이미 서울에 진입함으로써 연대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는 29일 새벽에 행주에 도착하여 제18연대의 한강 도하를 엄호한 후, 도하를 개시하여 김포로 철수했다. 철수 도중 개화산에 배치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곧 이들을 격퇴한 후 양화-영등포를 경유하여 시흥으로 이동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6월 29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옥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2-ㅊ-10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