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옥(李炳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93558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병옥 일등중사는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부근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6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옥 일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4월 중순, 제6사단은 북배산-수덕산-지암리-화악산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을 탈취하였고, 4월 21일에 대성산-육단리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하여 사창리까지 진출했다. 이때 중공군의 4월 공세 및 5월 공세로 큰 피해를 받고 용문산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5월 20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15일에는 백암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몰두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각 부대에 공세행동을 명령했다. 이에 제6사단은 1951년 10월 13일부터 정면의 중공군을 격파하고 10월 21일에는 교암산-송동리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후 사단은 몇 번의 부대 교대를 거쳐 1952년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전방 지역으로 이동했다. 당시 제19연대는 사단 예비로 활동하다가 5월 22일에 교암산과 전초기지인 575고지를 인수했다.
이후 1953년이 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이병옥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5월 17일부터 사단의 우측인 교암산 일대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중공군은 휴전협정 체결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금성천 분지를 감제하는 교암산 지역을 탈취하기로 하고, 7월 10일에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일명 금성지구전투가 시작되었다. 제19연대 장병들은 계속된 중공군의 공격으로 7월 14일에 교암산에서 적근산-주파령을 잇는 선으로 철수했다. 중공군은 7월 16일까지 적근산-주파령 방어선에 대해 계속 공격했다. 이곳에서 장병들은 강력한 저항으로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옥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2870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6-ㅎ-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