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옥(李炳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809406
  • 전몰일자 : 19521011

공훈사항

이병옥 일병은 1929년 7월 9일에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에서 출생하였다.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2년 3월 18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2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유엔군과 북한군은 1951년 11월 27일에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이 1952년 전반기까지 지속되었다.
사단의 좌전방에 배치된 연대는 1952년 4월 19일에 사단 정면에 위치하여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던 300고지를 기습했으며,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고 적병 일부를 사살 후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김화지구에서 전초 쟁탈전과 포로획득전,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제9사단은 1952년 6월 21일에 대규모의 포로획득과 더불어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1952년 9월에 접어들어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고지 쟁탈전이 격화되었다. 사단은 10월 6일부터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 예하 제114·제112사단과 12차례의 백병전이 거듭되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사단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철의 삼각지 서남부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전투를 마친 제9사단은 진지를 미 제3사단에 인계하고 사창리에서 부대정비를 하였다. 하지만 이 일병은 11차 공방전에서 소대원을 이끌고 끝까지 진지를 지켜내다 적탄에 맞아 1952년 10월 11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옥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ㅂ-04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