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오(李炳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831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이병오 일병은 경상남도 마산시 호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를 직접 지원하고 있었다.
이병오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중순, 제6사단은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9월 16일부터 정면의 북한군 제12사단을 격멸하고, 함창-문경-원주-춘천 방향으로 북한군을 추격했고, 10월 6일에 춘천 북방에서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계속해서 화천-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추격하여 성천을 점령했다. 이후 21일에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병오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하여 제7연대의 기동 속도를 증가시켰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다. 이에 제7연대 장병들은 희천에서 부대정비 후 온정리를 거쳐 초산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6일은 초산을 점령하고 압록강 변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이날 동림산 일대에 은거 중이던 중공군들에 의해 사단의 후방을 완전히 차단되었다. 이에 이병오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도 겹겹이 쌓인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며, 130km가 넘는 헌준한 산길을 따라 이동하여 11월 1일에 개천에 도착했다. 이후 11월 14일에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유엔군은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다. 이에 국군 제2군단도 공격에 참가했으나, 이번에도 공격 2일 차인 11월 25일 야간부터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군단의 후방이 차단당했다. 당시 공병중대는 장애물 설치보다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여 후방으로 철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평양방어선으로 철수했다. 이병오 일병은 12월 1일에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0판-3면-19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ㅇ-04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