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오(李炳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6671
  • 전몰일자 : 19501006

공훈사항

이병오 일병은 경상남도 마산시 산호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오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던 9월 초순, 제6사단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저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 선으로부터 전 전선에 공격했다. 이에 사단은 9월 16일 첫날 공격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정면의 349고지와 332고지를 탈환했고, 북한군은 조림산 방면으로 후퇴했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줄도 모르고 조림산 정상을 거점으로 방어진지를 강화하여 강력히 저항했다. 따라서 사단은 9월 22일까지 고전 끝에 조림산을 탈취했고, 북한군은 이날 새벽에 조림산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퇴각했다.
이병오 일병이 소속된 수색대는 그동안 낙동강방어선에서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습격하여 적의 후방을 교란하였고, 반격으로 전환했을 때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의 퇴각하는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에 전달함으로써 추격작전에 기여했다.
제6사단은 9월 23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의흥-함창-보은, 괴산을 거쳐 9월 29일에 충주에 집결했다. 9월 30일에 북한군의 경미한 저항을 소탕하며 원주에 진입했고, 계속 횡성-홍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4일에 춘천을 탈환했다. 그리고 제6사단은 10월 5일에는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이때부터 북한군의 저항은 점점 강해졌다.
이병오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사단의 선두에서 적진에 침투하여 적의 후방을 직접 교란하거나 적정을 사단에 보고하여 사단이 포병화력으로 공격하도록 유도했다. 수색소대는 10월 6일에 모진교 북쪽으로 침투하여 북한군의 후방지휘소를 습격하였고, 이날 그는 적의 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1-ㅁ-00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