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열(李炳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0058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병열 일병은 전라북도 익산군(現 익산시) 함라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전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1950년 5월 하순경 전라남도 광주에 위치한 제5사단에 현지 입대하여 사단 사령부로 배치되었다.
이병열 일병이 배치된 제5사단은 지리산 일대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사단 예하 제15・20연대 각 제3대대를 문산 지역으로 이동하여, 제1사단의 예비대로서 문산에서 남하하는 북한군 제6사단 예하의 2개 대대가 공격하는 것을 격퇴했다. 이후 봉일천 전투에서 제1사단 및 그에 배속된 제5사단 제15연대(-)・제20연대 3대대는 1950년 6월 28일까지 적을 저지하며 분전했으나 서울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 야간에 한강 행주나루터에서 민간 선박을 활용해 철수했다.
사단(-)는 의정부와 문산을 방어하던 제7사단과 제1사단이 철수하자 27일부터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미아리 지역 저지선을 구축하여 방어하고 있다가 28일 한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6월 28일 야간에 시흥지구전투사령부의 예비로 전환되어 수원 일대에 집결하여 부대정비를 실시하고 있었다. 국군은 7월 5일경에 부대를 재편성할 때에 제5사단을 해체하고, 사단 병력들은 제1, 2사단으로 통합했다. 그 후 사단은 10월 8일에 대구에서 제27, 35, 36연대 등 3개 연대와 수색대, 공병대, 통신대를 예하부대로 재창설했다. 이병열 일병은 제36연대로 재배치되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작전으로 미처 북으로 도주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이 산간지역으로 숨어들어 아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있었다. 사단은 재창설 후 후방지역 공비토벌작전을 위하여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면서 적 게릴라들을 소탕했다. 이병열 일병이 소속된 제36연대는 김천에 전술지휘소를 점령하고 소백산맥이 태백산맥으로 연결되는 지역의 적 패잔병 소탕을 위해 제1대대를 영동, 제2대대를 거창, 3대대를 김천 지역에 배치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과 좌익빨치산들은 수시로 산간 지역 마을을 습격하여 野民들을 살해하고 보급품을 조달했다. 이에 제36연대는 경찰과의 긴밀한 협조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병열 일병은 10월 하순경 충청북도 영동 지역에서 분대원과 함께 적 게릴라와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열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1판-6면-13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0-ㅌ-04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