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열(李炳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201718
  • 전몰일자 : 19500626

공훈사항

이병열 일병은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50년 1월 초순 제1사단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소총병으로서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당시 제11연대는 개성지역 38도선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후 1950년 4월 25일 제11연대가 개성지역 38도선 경계 임무를 제12연대에게 인계하고 예비로 전환되면서 연대는 제13연대로 전환되었다.
제1사단은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에 이르는 광정면의 38도선 경계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은 제12연대를 좌측 개성 일대에, 제13연대를 우측 임진강 일대에 배치해 38도선 경계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제11연대는 사단의 예비대로 수색에 배치해 운용하고 있었다.
이병열 일병은 연대 장병들과 함께 개성 일대의 방어력 증강을 위한 진지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북한군의 도발이 수시로 이어지면서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이병열 일병과 장병들은 임진강 도하 작전에 참전하여 혼신을 다해 싸웠으나 T-34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 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의 전투력은 아군에 비해 월등히 우세하였다. 연대 일부에서는 대전차 특공대를 편성하여 육탄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그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 일병과 연대병력이 구축하였던 38도선 방어진지는 6월 25일 오전 중에 무너져 버렸다.
이 일병과 일부 병력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였으나 끝내 진지를 지켜내지 못하고 이병열 일병은 1950년 6월 26일 의정부 지구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0-ㅈ-02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