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열(李炳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0435
  • 전몰일자 : 19501002

공훈사항

이병열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1950년 8월 30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했다. 당시 전황이 워낙 급박했던 관계로 이 일병은 간단한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제7사단 통신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북한군과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제7사단은 8월 20일 제3·5·8연대와 제5포병대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어 영천에서 적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9월 5일 북한군 제15사단은 영천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제8사단이 영천 남쪽으로 철수함에 따라 6일 영천이 피탈되었다. 이에 제7사단은 9월 8일 제2군단에 배속되어 영천 전투에 투입되었고, 9월 10일 제8사단에 배속되었던 제5·8연대와 제3연대 1대대가 사단으로 원복했다. 이날 반격을 시작한 사단은 당일 영천을 탈환하고, 12일 관산과 영천-안강 간 도로를 확보했으며, 13일에는 기계-안강 방면의 적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무학산과 384고지를 점령 후, 기계 방면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격멸했다. 사단은 영천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조국을 지켜내는 데 크게 기여했고, 대통령 부대표창도 받았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추격작전 때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7일 서울 청량리에 도착했다. 부대가 신속하게 기동하는 가운데 지휘통신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일병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통신을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10월 2일 장호원 부근에서 적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1판-1면-03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9-ㄱ-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