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열(李炳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2443
  • 전몰일자 : 19501001

공훈사항

이병열 일병은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열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말, 제6사단은 신녕 북방의 370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북한군과 연일 치열한 전투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북한군은 9월 2일에 대규모 공세를 개시하였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우세한 항공 및 포병 화력을 이용하여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지만, 아군도 영천이 피탈되는 등 큰 위기가 있었다. 결국은 북한군의 피해가 훨씬 심했으며, 이처럼 치명적인 피해를 본 북한군은 9월 12일 이후에는 공격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전 지역에서 방어로 전환했다.
이에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 전 지역에서 9월 16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북한군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것도 모르고 강력히 저항했다. 제6사단은 첫날 반격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정면의 349고지와 332고지를 탈환했고, 북한군은 조림산 방면으로 후퇴했다. 적들은 조림산 정상을 거점으로 방어진지를 강화하고서 9월 22일까지 국군의 공격에 완강히 저항하다가 이날 새벽에 조림산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소리 없이 퇴각했다.
이병열 일병은 장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9월 23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들을 소탕하며 추격하여 의흥-함창-보은 방향으로 진격했으며, 9월 27일에 보은을 탈환했다. 계속 추격하여 괴산을 거쳐 9월 29일에 충주,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하고, 10월 1일에 횡성-홍천 방향으로 추격했다. 이날 홍천 일대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잔적을 소탕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2판-6면-27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ㅋ-09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