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열(李秉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5501454
  • 전몰일자 : 19510103

공훈사항

이병열 이병은 전라남도 장흥군 안양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이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이병은 1950년 6월경에 입대 후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됨에 따라 제1연대는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1연대 소속이었던 이 이병은 전후 행정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28연대로 정리되었다.
이 이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6·25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제7사단은 동두천 축선의 38도선 방어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은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4사단과 혈전을 벌였지만 적의 탱크를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탄약마저 고갈되어 후방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아군이 1950년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는 전황 속에서, 제9사단은 10월 25일에 서울에서 제28·제29·제30연대를 예하부대로 두고 창설되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은 청천강 선으로 투입되었다. 따라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11월 15일에 전북 금산군 남이면에서 1개 대대 규모의 공비를 소탕했고, 동년 11월 20일에는 상용리에서 적 200여 명을 포획 섬멸했다. 그리고 11월 23일에는 대둔산 대평리, 삼왕리를 포위 공격하여 산속 깊숙이 은거하고 있던 적을 소탕하고 적의 근거지를 제거하는 전과를 올렸다.
12월 19일부로 제9사단은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고 이후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이병은 적탄에 맞아 1951년 1월 3일에 안타깝게도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열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7-ㄲ-05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