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열(李炳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9801471
  • 전몰일자 : 19510812

공훈사항

이병열 이등중사는 1929년 5월 23일에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수색대는 소대 단위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병열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초순, 제6사단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이곳에서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사단의 선두부대는 10월 5일에 38도선을 돌파하였고, 10월 26일에 압록강 초산까지 진출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두 차례를 받아 큰 피해를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전곡-백의리를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제6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1951년 1월 6일에는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2월 초에 방어배치 조정에 의거 문막 북쪽의 판대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즉각 반격으로 전환했다. 사단의 반격작전은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28일에 구만리(화천)발전소-병풍산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제6사단은 6월 5일부터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 적근산-백암산 선까지 확보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병열 이등중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했다. 그러던 중 수색소대는 8월 12일에 적진에서 활동하던 중 적에게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열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6593국)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40판-2면-02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ㅈ-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