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열(李秉烈)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123

공훈사항

이병열 순경은 1930년 9월 18일 경북 구미읍 봉곡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북도경 구미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길안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구미경찰은 경북경찰의 일부로서 아군이 지연전을 전개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까지 오열 색출, 정보수집, 주보급로 경비, 철도경비, 치안유지,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7월 10일 단양에서 남진한 북한군 제12사단은 죽령으로 진군했으며, 영월 방면에서 우회한 북한군 제8사단이 아군 정면을 공격함에 따라 피·아 간 공방전이 벌어졌다. 3일간에 걸쳐 악전고투를 계속한 끝에 경북경찰은 진지를 포기하고 7월 12일 풍기에서 구미에 이르는 지연전을 펼치다가 다시 구미에서 후방으로 후퇴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구미경찰은 9월 23일 구미경찰서를 수복하고 치안유지, 주요 보급로 경비, 오열 색출, 철도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1951년 1월 초 북한군 제10사단(병력 약 5,000명)이 제천, 단양, 영주, 조령, 동로, 봉화, 안동지구로 침투했다. 이들 중 1,000여 명의 병력이 1월 23일 새벽에 안동군 길안면 묵계동을 공격했다. 이들은 1월 21일 길안 북방 임동에서 경찰대의 공격을 받고 야간을 이용하여 남진한 병력이었다.
제207부대 제2대대에 편성된 이 순경은 이날 적을 격퇴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되었다. 동 부대는 오전 9시에 현지에 도착하여 미 해병사단의 박격포 지원하에 적을 공격했다. 이리하여 오전 11시에 묵계를 탈환하고 곧바로 적을 추격하여 500명을 격퇴했다. 이 전투에서 적 100여 명을 사살하고 소총 4정을 노획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날 이 순경은 묵계에서 적을 격퇴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열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ㅁ-02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