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연(李炳淵)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2094
  • 전몰일자 : 19501215

공훈사항

이병연 일병은 1932년 3월 28일 경상북도 금릉군 봉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6월 26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 훈련을 수료한 후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미약한 병력과 장비로 사력을 다해 싸웠다. 육군본부는 여러 직할부대를 동원하여 전방의 제1사단,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강화하였다.
이병연 일병과 일부 병력은 철수와 방어로 이어진 수세적인 전투만 전개하던 중 일시 공격으로 전환하여 혼성대대 병력이 동두천을 탈환하고 소요산까지 진출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대규모 반격으로 의정부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인해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한 후 6월 28일부터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후 이 일병과 장병들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전투를 수행하면서 축차적으로 지연작전을 실시하여 1950년 7월부터는 낙동강선 방어 작전에 돌입하였다. 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 선에서 강력한 방어 작전을 전개하여 북한군의 공세를 꺾었다. 이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공세로 전환한 이 일병과 장병들은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이병연 일병과 장병들은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해 한・만 국경에 도달하였고, 11월 30일에는 부령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이 일병과 일부 병력은 불법 개입한 중공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 38도선 이남으로 다시 철수하게 되었다.
그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연 일병은 중공군의 공세로 인한 철수작전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0년 12월 15일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4판-5면-0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4-ㄹ-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