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연(李炳然)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4916
  • 전몰일자 : 19510104

공훈사항

이병연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옥포읍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이병은 1950년 10월경 입대 후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의 부대 전입 당시 제10연대는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해 있었다. 강원도 춘천 지역은 태백산맥의 고지들이 종횡으로 연결된 산악지대였으며, 소양강과 북한강이 산악 사이로 복잡하게 흐르는 환경이었다. 당시의 전황은 제8사단 제10연대를 비롯한 국군 6개 사단이 가평-춘천-인제 축선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중공군 제42·제66군과 북한군 제2·제5군단이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해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했다. 토산에 도착한 제8사단 장병들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연천으로 집결하기 위하여 3일간의 휴식을 마치고 1950년 12월 9일 토산을 출발하였다.
제8사단 장병들은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적을 추격하였지만, 좌·우측방으로부터 끊임없이 돌진하는 북한군을 상대로 방어하기엔 형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제8사단은 치열한 교전을 통해 520고지를 최종적으로 확보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은 여전히 520고지 일대를 재탈환하기 위해 지속해서 국군의 방어진지를 침투하며, 야간 공격도 감행했다. 제8사단의 연대는 520고지 일대 능선에 각각 배치되어 산병호를 구축하고 날이 저물어도 사주경계에 임하고 있었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북한군과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직면했다. 제8사단 정면으로 중공군 제66군 소속 제196·제197·제198사단이 진격해왔다. 제8사단은 당시의 혹한과 강설로 진지 구축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제8사단 장병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좌·우측 전선이 돌파되었기에 강원도 홍천군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일병은 1951년 1월 4일 강원도 홍천군 일대에서 철수 작전을 엄호하던 도중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3판-1면-1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0-ㅁ-07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