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연(李炳淵)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96149
  • 전몰일자 : 19530609

공훈사항

이병연 이등중사는 1931년 5월 20일 경상북도 선산군 산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전선이 교착되고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시기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1952년 2월 17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이 이등중사는 동 훈련소 조교로 배치되어 신병교육에 전념하다 제52교육보충연대가 창설되면서 이 연대로 전속되었다.
한편,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회담이 진행되자, 한·미는 미군 재보충이 어려운 상황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4월 28일 3개의 경장비 교육보충연대(제37·38·39연대)가 창설되었고, 6월 13일 다시 같은 성격의 3개 연대(제50·51·52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중 제52연대는 독립연대로서 화천 축선을 담당하고 있던 제2군단 예비로 투입되었고, 이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은 교육훈련을 하면서 후방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보급로 확보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제12사단은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신편된 제53·55·56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가, 12월 10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7·51·52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했다. 사단은 12월 18일 인제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을 끝내고, 12월 27일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0일 미 제45사단과 임무 교대하여 서화계곡을 감제하는 812-854고지를 잇는 전선을 인수했다.
제52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진지교대 이후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적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로, 새로 투입된 중공군의 전투경험 축적과 아울러 방어선을 개선할 목적으로 6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 공세의 일환으로 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3군단 예하 제45사단이 1953년 6월 1일부터 공격을 가해왔다. 사단 좌전방의 제37연대가 812고지를 탈취당하자, 연대는 역습을 감행하여 6월 10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지만 결국 812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진두에서 용감하게 돌격하다 적탄에 맞아 6월 9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연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려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7427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5-ㅇ-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