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연(李炳蓮)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9316
  • 전몰일자 : 19500819

공훈사항

이병연 일병은 1930년 5월 5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북한의 남침 우려가 커지는 가운에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 10월경 제7사단에 입대하여 본부중대에 배치되었다.
제7사단은 6·25전쟁 발발 당시 의정부 축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동두천 축선에 제1연대가, 포천 축선에 제9연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사단사령부는 의정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북한군은 주공인 제1군단이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전차 1개 대대를, 포천 축선에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을 투입했다. 사단은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 일병이 소속된 본부중대는 의정부에 위치한 지휘소 경계에 임했다. 북한군이 25일 동두천과 포천을 함락하고, 26일 의정부로 남진하자 본부중대는 창동선으로 철수했고, 창동선이 무너지자 사단사령부와 함께 28일 노량진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철수했다. 6월 29일부터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편성되었고, 혼성 제7사단은 노량진 방면의 한강선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사단 장병들은 이 지역에서 용감하게 싸우며 7월 2일까지 적의 도하를 저지했고, 본부중대원들도 노량진 방어선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7월 3일 새벽 북한군이 경부선 철교를 보수하여 전차를 도하시켰고, 이 전차들이 노량진-영등포로 진출함으로써 사단사령부와 본부중대는 안양으로 철수했다.
7월 5일 육군본부는 부대를 재편하여 손실이 심한 제5·7사단을 해체했다. 7월 16일부터 제7사단은 제3·9연대를 임시 편성하고, 전북 일대에서 신병모집 임무를 수행하다 7월 20일 민부대로 개칭되었다. 7월 중순부터 북한군 제6사단이 호남지역으로 투입됨에 따라 민부대는 이리-전주-임실-남원-운봉-함양-하동-진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펼쳤다. 8월 1일 민부대는 미 제25사단에 배속되어 마산 방면에 투입되었고, 함안의 괘방산, 서북산과 진동리 일대에 배치되어 11일까지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민부대는 8월 12일 미 제25사단에서 배속 해제되었고, 15일부터 19일까지 포항전투에 투입되어 포항을 탈환했다. 이 일병은 본부중대 소속이었지만 상황에 긴급할 때는 일선에 투입되어 소총수과 같이 전투에 임했다. 이 일병은 포항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8월 19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8-ㅊ-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