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양(李秉楊)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767042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병양 이병은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초순경 춘천에 위치한 제5사단에 현지 입대하여, 개인화기 사격술 등 기본적인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양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할 때인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하여,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고 12월 5일부로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사단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25연대와 교도대대로서 춘천 북방 촛대봉-봉덕산-가덕산을 잇는 선에서 최후 저지선을 설치했다. 북한군 제29연대는 화천으로 이동하여 집결 중이었다. 이러한 북한군은 중공군의 남하에 힘을 얻어 교착상태의 전투가 지속되었다. 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당시 이병양 이병이 소속된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 그리고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5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에 배치시켜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개시하여 사단의 후방을 차단하였으며,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제5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병양 이병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시 가평 북쪽 지암리 일대의 연대 방어진지를 사수하려고 교전하다가 1월 1일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중공군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양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7판-3면-26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1-ㄴ-07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