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식(李炳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8175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병식 일병은 1926년 10월 16일에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現 김포시 양촌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8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수색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 및 보고하거나 지휘소를 습격하고 탄약고 등 주요시설을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병식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5사단은 영남지역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고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사단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25연대와 교도대대로서 춘천 북방 촛대봉-봉덕산-가덕산을 잇는 선에서 최후 저지선을 설치하고, 제29연대는 화천으로 이동하여 집결 중이었다. 이러한 북한군은 중공군의 남하에 힘을 얻어 교착상태의 전투가 지속되었다.
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당시 제5사단은 제36연대를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 그리고 제27연대를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5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에 배치시켜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사단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병식 일병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시 가평 일대 적 연대 지휘소를 분대원과 함께 습격하던 중 1월 1일 적 경계병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4판-6면-10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1-ㄱ-07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