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식(李炳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11871
  • 전몰일자 : 19501213

공훈사항

이병식 일병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6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7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병식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초순, 미 제7사단은 일본에서 한반도로 투입될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던 미 제7사단 제32연대에 배치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상륙훈련을 마친 후 9월 13일에 상륙함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향했다. 미 제32연대가 먼저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하여 서울로 진격했다.
이병식 일병이 소속된 미 제32연대는 서울-인천 국도의 남쪽 지역을 책임지게 되었으며, 미 제31연대는 수원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미 제31연대가 9월 22일 수원비행장을 점령하여 중요한 항공기지를 확보하였다. 이후 제32연대는 관악산을 우회하여 과천-우면산 방향으로 진격하여 9월 25일에 신사리에서 서빙고 방향으로 도하하여 오후 늦게 남산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미 제7사단은 계속해서 미 제10군단에 소속으로 원산상륙작전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단 장병들은 10월 6일부터 철로와 차량을 이용하여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 10월 29일에 원산을 향해 출항했다. 이미 국군 제3사단이 원산을 점령한 관계로 미 제7사단은 11월 8일에 이원으로 상륙하여 풍산-갑산을 거쳐 혜산진까지 진격했다. 이때 원산이 중공군에게 함락당하여 후방이 차단되었기 때문에 사단은 11월 27일부터 철수를 실시했다.
이병식 일병이 소속된 미 제32연대는 철수 도중에 장전호 동쪽의 중공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받으면서 12월 2일에 하갈우리로 집결했다. 이곳에서 미 제1해병사단과 함께 함흥을 향해 적들의 차단선을 돌파하기로 했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12월 6일부터 돌파를 감행하여 8일에 ‘죽음의 계곡’을 통과하여 고토리에 도착했고, 10일에는 황초령을 돌파하여 진흥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12월 11일에 함흥지역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도로를 차단한 적과 치열한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2월 13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8면-11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ㅂ-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