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식(이병식)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604408
  • 전몰일자 : 19510211

공훈사항

이병식 이등중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이등중사는 1949년 7월 22일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단양, 제천 등 총 8개 군 지역에서 북한의 무장유격대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북한군 제5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다. 이에 강릉에 주둔해 있던 제8사단은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연전을 펼쳤지만 적의 화력에 주문진을 상실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이 이등중사가 속한 제8사단은 1950년 8월 낙동강까지 후퇴를 하였지만 9월에는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10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0월 9일 연천 남방에 도달했다. 이후 1950년 10월 24일 서북방의 239고지에 잠복하여 저항을 기도하는 적 약 1개 대대의 병력을 포위하고 패잔병을 완전히 소탕했다. 제8사단은 1950년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구장동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개입으로 제8사단은 적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구장동 일대에 배치되었는데, 이때 청천강으로 철수하라는 요청에 제8사단은 영원 방면까지 철수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3일 맹산에 전방지휘소를 개설하고 묘향산 동쪽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에 돌입했다. 이어서 제8사단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520고지의 점령을 위해 연천에 집결해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했다. 하지만 중공군에 비해 열세한 화력과 적군의 우회 침입 작전에 직면하여 위기에 놓였으나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 데 성공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적군을 대적했으며,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 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혹한에서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다.
아군은 전력을 가다듬어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지만 홍천군 삼마치 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했다. 이후 국군은 5일간 제병협동작전을 실시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특히 제8사단의 피해가 컸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1951년 2월 11일 강원도 횡성군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식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ㅊ-08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