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시(李炳是)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2180
  • 전몰일자 : 19510510

공훈사항

이병시 일병은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면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1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청천강 선에서 37도선 일대로 철수했고, 제7사단도 철수하여 횡성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함에 따라 사단은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서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3군단은 제3사단 제2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하여 영월을 탈환하도록 했다. 사단은 1월 19일 만경대산을 공격하여 이를 점령하고, 20일 영월 탈환의 관건이었던 응봉산을 공격하여 치열한 교전 끝에 이를 점령했다. 이어 사단은 24일 영월로 진격하여 이를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사단은 16일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에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사단은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사단은 2월 21일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 3월 6일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사단이 소속된 제3군단은 조공으로 공격했고, 사단은 3월 6일 하진부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평창군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이 일병은 병기 정비병으로서 적시적인 병기 보급과 수리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 전투에서도 이 일병은 제3연대의 병기 정비를 위해 앞장서서 이동하다 적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5월 1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8판-3면-06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ㅇ-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