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수(李炳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746319
  • 전몰일자 : 19530723

공훈사항

이병수 일등중사는 1931년 4월 5일 충청북도 옥천군 안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1년 9월 15일 제7사단에 입대하여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의 신 캔자스선(화천저수지-펀치볼-향로봉-간성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군 백석산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사단은 양구에서 부대 정비 후,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있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인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중공군 제68군 예하 제204·202사단의 3차에 걸친 공격(1차 : 1951. 12. 25~28, 제2차 : 1952. 2. 11~13, 3차 : 1952. 10. 6~14)을 막아내며 이 고지를 지켜냈다. 사단은 11월 15일 미 제25사단에 현 전선을 인계한 후 양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병행했다. 사단은 11월 하순 다시 전선에 투입되었고, 이후 큰 전투 없이 수색정찰, 매복, 적진 교란작전 등을 지속했다.
사단은 1953년 5월 18일 제20사단에 전선을 인계하고, 미 제10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현리 일대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한 후, 6월 17일 제20사단의 좌측 전선을 인수하여 백석산 전방의 938고지 일대의 주저항선 방어에 임했다. 공산군은 하계공세의 일환으로 6월 25일 중공군 제179사단이 938고지를 공격했고, 연대 장병들은 7월 1일까지 백병전을 펼치며 분전했으나 결국 이 고지를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사단은 7월 1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제11사단 및 제8사단의 전선 일부를 인계받아 강원 화천군 백암산 전방 금성천 변의 425고지와 406고지 전초진지 방어에 임했다. 연대는 7월 20일부터 24일까지 406고지에서 중공군 제180사단을 맞아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결국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휴전을 맞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진지를 끝까지 지키다, 7월 23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수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려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73480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5-ㅁ-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