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수(李秉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704351
  • 전몰일자 : 19510828

공훈사항

이병수 일등중사는 1928년 4월 30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 1월경 제6여단 제7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3사단 제23연대로 전속되었다. 이 일등중사는 1950년 3월까지 경북의 일월산, 보현산 등지에서 북한의 유격대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대는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어 9월 14일까지 동해안 축선의 강구, 영덕, 흥해,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쳤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파죽지세로 나아가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한 후 백암까지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에 진지가 돌파당하면서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을 물리치고 영월을 탈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연대는 2월과 3월 유엔군의 반격작전 때 강원 인제군 봉화산과 하진부리 일대에서 공방전을 펼쳤다.
국군과 유엔군은 4월 초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인제군 한계리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가리봉, 한석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 방어선인 가리봉을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장병들은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5월 말 강원도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일등중사는 8월 28일 간성 일대에서 매복작전 중에 적과 조우하여 교전 중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수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ㄹ-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