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수(李炳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6804200
  • 전몰일자 : 19520929

공훈사항

이병수 일등중사는 1928년 5월 4일 경상북도 경주군 내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등중사는 1950년 8월 6일 제3사단 제22연대에 현지 입대했다.
이 일등중사가 입대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영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영덕,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혈전 끝에 마침내 북한군의 공세를 물리쳤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도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연대는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하여 일일 평균 24km의 속도로 북진하여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11월 11일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4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간성 일대에서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 후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9월까지 큰 전투 없이 현 전선을 유지하면서 전투정찰,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그러다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는 역습을 실시하여 백병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진지를 지키다 9월 29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수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9852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3판-4면-127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ㅎ-05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