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수(李炳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501020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병수 일등상사는 1946년 12월 15일에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면(現 창원시 진해구)에서 출생했다. 그는 광복 이후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6년 12월 15일 부산에 위치한 제5연대로 현지 입대했다. 연대는 1949년 7월 10일 제2사단으로 예속 전환되었고, 부산에서 온양으로 이동했다. 이 때 이병수 일등상사는 충청남도 대전 육군본부 내에 위치한 육군병기감사단으로 전속되었다.
병기감사단은 수시로 예하부대에 대한 병기감사를 실시하여 병기 취급에 신중을 기하도록 했다. 그러나 병기감사단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6·25전쟁 발발 전에 해체되면서 이병수 일등상사는 병기단으로 재배치되었다.
한편 육군본부는 병기부대를 확충하여 1948년 9월 1일 육군 병기단을 창설했다. 이 때 병기단은 제1·2병기대대 본부와 제1병기정비중대, 제1병기탄약중대, 병기중정비중대, 병기경정비중대, 병기창고중대 등으로 편성되었다. 하지만 병기의 대부분을 미군 군원에 의존하고 있었고, 보급·정비 능력은 극히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6·25전쟁 발발 당시 북한군은 동두천, 포천 축선에 주공인 제1군단의 주력을 투입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1개 대대를, 포천 축선에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을 투입했다. 제7사단은 북한군의 T-34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사단 장병들은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분전했으나,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6월 25일 포천이 적에게 함락되고, 6월 26일에는 의정부마저 함락되게 되었다.
전쟁 초기에 탄약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대부분의 부대들이 탄약이 떨어져가는 위급한 상황에 직면했고, 고장난 화기도 보충, 정비하지 못해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가 없었다. 병기단은 부평 창고에 보관된 총포를 2대의 트럭에 적재하여 위급한 의정부와 창동 지역에 지원하는 등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이병수 일등상사는 소대원을 통제하며 제7사단으로 탄약보급을 위해 이동하던 중에 적 포탄에 맞아 전쟁 첫날인 6월 25일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수 일등상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9판-4면-0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ㄴ-06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