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수(이병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31013
  • 전몰일자 : 19520315

공훈사항

이병수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現 경산시) 와촌면 음양리에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중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수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대구에서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 후 사단은 12월 5일경 전방지역으로 투입되면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철수하는 아군의 엄호작전 후, 12월 13일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등에서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에서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여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9월 4일부터 40여 일간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끝내는 동 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며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했다. 이후 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952년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에 이병수 일병이 소속된 제35연대는 진지를 더욱 보강하면서 적정 탐색 및 적 침투 방지를 위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지속했다. 이병수 일병은 2월 하순경 분대원과 함께 전초진지를 보강 중 적 포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부산에 위치한 제7육군병원(1952.6.25.부로 제7정양병원으로 개칭)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52년 3월 15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11묘역-7판-54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ㅈ-101)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