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수(이병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07646
  • 전몰일자 : 19501230

공훈사항

이병수 일병은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8년 6월 3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고 육군직할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미약한 병력과 장비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방어하고 있었다. 육군본부는 여러 직할부대를 동원하여 전방의 제1사단,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강화하였다. 이병수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 열세로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6월 29일 혼성 제7사단에 편성되어 한강방어선의 노량진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하 공격을 7월 3일까지 5일간이나 저지함으로써 국군이 북한군에게 포위될 수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유엔군이 증원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데 기여했다.
이후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여 7월 말에는 낙동강에 이르렀다.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예속되어 8월 초순부터 낙동강방어선의 안강지역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병수 일병과 장병들은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적을 물리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단은 퇴각하는 북한군을 낙동강전선에서부터 도평-영양-춘양-영월-평창-속사리 방향으로 추격해 10월 1일 하조대 부근에서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이후 사단은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한 후 동해안 도로를 따라 계속 진격하여 11월 24일 아침에 나남에 접적 없이 진입하여 청진을 점령했다.
그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은 불법 개입한 중공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제1연대는 12월 7일부터 성진에서 흥남으로 철수하여 흥남 동부 외곽을 점령했다.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병수 일병은 12월 30일 양양 부근 전투에서 중공군의 기습사격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93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4-ㄲ-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