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수(이병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43879
  • 전몰일자 : 19510313

공훈사항

이병수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중공군의 공세와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1월 8일 육군직할 제111노무단에 동원되었다.
노무대는 1950년 7월 26일 민간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부대이다. 연령 제한은 35-45세였지만 실상은 10대 소년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이 모여 있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군수품을 최대한 신속하게 공급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로 물자를 운반하는 데는 최악의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유엔군은 원활한 보급을 위한 수단으로 민간 인력을 요청하였고, 국군은 7월 26일부로 병력과 보급 등 후방지원을 위해 민간인을 징발하게 되었다.
이병수 일병과 대원들은 전쟁에서 악천후와 험난한 지형을 무릅쓰고 자동차 수송이 불가능한 지역에 보급품을 운반하였다. 그들은 전투 물자가 필요한 모든 전장에서 탄약, 연료, 식품 등 보급품은 물론 부상자와 심지어 전사자 후송 등 모든 병참 활동을 담당하였고, 16Km 떨어진 고지를 왕복하며 전투 현장에서 활약하였다. 노무단 대원들은 최대한 많은 물자를 빠르게 나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어지는 부식은 썩은 파와 배추, 그리고 7인당 1개씩 주어지는 통조림이 전부였다. 너무 힘에 부쳐 쓰러지기도 했으며 군복을 지급받지 못하여 징집 당시 입었던 흰색 무명 바지 또는 학생복 등 눈에 잘 띄는 복장을 그대로 입었던 대원들은 적에게 표적이 되기 일쑤였다.
이 일병과 대원들은 총칼을 들고 싸운 많은 장병들 속에서 단순 노동력으로 치부되면서도 묵묵히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험준한 산악지역을 오가며 보급품을 운반하였다. 그러던 중 이병수 일병은 1951년 3월 13일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총탄에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935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5-ㄷ-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