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수(이병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506188
  • 전몰일자 : 19500804

공훈사항

이병수 일병은 1931년 6월 25일 경상남도 밀양군 상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 7월 4일 제3사단 제5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동 사단 수색중대로 전속되었다. 이 일병은 1950년 3월 27일까지 향로봉, 밀양, 양산, 언양, 울산 일대의 공비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사단은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제22연대와 제23연대의 대전차포중대 및 2개의 중화기중대를 서울로 출동시키고, 제23연대만을 가지고 전투에 대비하게 되었다. 6월 27일 북한군이 강릉을 점령하고 제8사단이 제천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자, 동해안 축선은 제3사단의 전투정면이 되었고, 사단은 29일 출동하여 울진 남쪽의 왕피천에 도착했다.
사단은 7월 1일 새벽에 울진 시가지를 공격, 경미한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이를 탈환한 후 동해 가도 상의 138고지와 남대천 및 왕피천 일대에 부대를 배치했다. 북한군 제766부대는 주력을 동해 가도로 기동시키고, 일부 병력을 산간지역으로 우회시켜 사단을 협공했다. 사단 장병들은 138고지에서 왕피천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분전하였으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7월 2일 영해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사단은 7월 3일부터 10일까지 영해와 평해 일대에서 적 유격대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7월 13일 영해 북방의 고지군을 점령한 사단은 영덕까지 지연전을 실시하였으나, 19일 적 제5사단의 기습적인 배후 공격으로 영덕을 탈취당하고, 영덕 동남쪽(1km)의 181고지~207고지 능선으로 철수하여 급편방어에 들어갔다. 21일 사단은 역습을 가하여 영덕을 탈환하였으나, 22일 적의 야습을 받고 다시 영덕 일대로 철수했다.
7월 24일 제22연대가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함에 따라 사단의 전투력이 크게 증강되었다. 이에 사단은 지·해·공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다시 공격을 개시했고, 영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백병전이 거듭되는 공방전을 펼친 끝에 8월 2일 마침내 영덕을 탈환 후 급편방어에 들어갔다. 이 일병은 영덕 북방의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탐색을 하다 8월 4일 적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94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ㅋ-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