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수(李炳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8801410
  • 전몰일자 : 19530713

공훈사항

이병수 이등중사는 1933년 10월 17일에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3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수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4월 하순, 제2연대는 김화 북방의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방어준비에 전념하고 있었다. 전선은 1952년 4월부터 중공군에 의한 공격작전이 잦았다. 이에 제2연대는 6월 12일에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금성천 동북방 A, B고지)에 대한 공격을 실시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6월 15일 탈취하고 적의 증원과 역습을 격퇴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으나, 9월이 되면서 중공군이 9월 29일에 금성천 동북방 A, B고지를 되찾기 위해 강력한 화력지원 하에 공격을 개시하였고, 제2연대는 30일까지 끈질기게 저항하여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고,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이병수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사단 예비로 있다가 1953년 2월 5일부로 전방 방어지역인 교암산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5월 17일부로 사단의 예비로 다시 전환하여 야간 매복작전과 주간 위력수색작전에 중점을 두면서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6월 10일부터 좌인접부대인 국군 제8사단 지역이 중공군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하자, 6월 13일부로 제8사단에 배속되어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6월 16일 복귀했다.
이쯤 중공군은 휴전협상이 타결될 기미가 보이자 휴전이 되기 전에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 위해 7월 10일 오전 7시부터 교암산을 향해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당시 교암산을 담당한 제19연대는 포격전과 총격전으로 격퇴하고자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에 제2연대는 7월 12일부로 제19연대로부터 교암산 지역을 인수하였고 중공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제2연대 장병들은 7월 13일에 상급부대의 항공화력과 포병화력을 지원받아 격퇴하고자 했으나, 중공군의 공격이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였다. 장병들의 피해도 점점 증가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수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2978육)를 추서하고, 그의 위패(36판-5면-151)를 국립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6-ㅈ-00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