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수(李炳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8806677
  • 전몰일자 : 19521007

공훈사항

이병수 상병은 1932년 11월 11일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3월 12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수 상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4월 하순, 제6사단은 김화 북방의 765고지-교암산을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사단은 1951년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9일 동안 백암산 전방의 중공군을 대파하고 교암산-송동리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고, 이어 11월 17일과 18일 양일에 진지 전방의 949고지를 탈취하여 전초기지로 운영했다. 이는 공산군으로 하여금 휴전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해제 되어 사단과 함께 양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을 하다가 3월 22일부로 미 제9군단에 다시 배속되어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병수 상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우측 지역인 765고지-교암산을 주저항선으로 점령하고, 제2대대 장병들은 전진기지인 575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 고지는 대치하고 있는 적들에겐 눈엣가시처럼 돌출되어 있었다. 중공군들은 575고지를 빼앗기 위해 1952년 4월 16일에 야간에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탈취했다. 아군은 즉각 역습하여 4월 18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뺏고 빼앗기는 혈투를 벌였으나, 끝내 되찾지 못했다.
제7연대는 5월 22일에 제19연대에 방어진지를 인계하고, 연대는 사단 예비로 전환하여 부대정비 및 진지보강공사, 수색정찰과 매복활동에 집중했다. 이병수 상병이 소속된 소대는 10월 7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수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94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ㅇ-05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