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세(李炳世)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2947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병세 일병은 1930년 4월 10일에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3일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에 파견된 한국군)병으로 선발되어 경상남도 구포에 위치한 육군 제3훈련소에 입대했다. 이병세 일병은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美 제8군으로 배치되었으나, 이후 부대조정에 의해 다시 제5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병세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영남 지역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와 같이 사단은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면서 아군 6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그 후 사단은 11월 27일부터 육군본부 통제하에 철의 삼각지대에서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12월 2일 잔적의 거점인 춘천을 목표로 공격하여 임무를 달성하고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이병세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12월 5일경 춘천 전방지역 17번 국도 상으로 투입되어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 제35연대는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대규모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전방연대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병세 일병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시 가평 일대 적 연대 지휘소를 분대원과 함께 습격하던 중 1월 1일 적 경계병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전사자 명부에 전사 장소가 횡성은 오류임).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세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1판-3면-12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1-ㄲ-07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