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성(李炳聲)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71672
  • 전몰일자 : 19521225

공훈사항

이병성 하사는 1930년 7월 5일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2월 9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2년 초반까지 쌍방 간에 합의되었던 임시휴전선이 백지화됨에 따라 회담의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병성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2년 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금성 방면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화천 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 활동을 실시하던 중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교전을 벌여 적을 여러 명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후 이병성 하사는 연대병력과 함께 교암산 동쪽 765-690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 수도고지 등에서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지형능선과 수도고지에 대한 제한공격이 무위로 끝난 후 전선은 8월 초까지 다시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던 중 8월 5일 북한군이 소강상태를 깨고 수도고지로 공격을 재개하여, 2차례에 걸쳐 진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수도고지의 전초소대가 북한군의 포격에 견디지 못하여 주진지인 663고지로 철수하고 말았다. 북한군은 그 기세를 몰아 663고지 일대로 압박해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6일부터 8일까지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교착상태에 놓여있던 전선은 9월 6일부터 다시 북한군의 공격이 재개되었다. 고지를 방어 중이던 이병성 하사와 연대병력은 북한군의 포화에 의한 극심한 피해와 병력의 열세로 6차례에 걸쳐 탈환전을 전개하였으나 모두 실패를 거듭하면서 수도고지가 북한군에게 유린되고 말았다. 이어 10월 6일부터 4일간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이 하사를 비롯한 제1연대 장병들은 11월 3일부터 9주간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성 하사는 1952년 12월 25일 사창리 부근에서 경계 임무 도중 북한군의 총탄에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성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7-ㄷ-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