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성(李秉星)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802965
  • 전몰일자 : 19501101

공훈사항

이병성 일등상사는 경기도 영주군 가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헌신하고자 1948년 6월경 제4여단 제8연대에 입대했다. 제4여단은 동년 11월 20일 제6여단으로 개칭되고, 제6여단은 1949년 5월 12일에 사단으로 승격되어 홍천 지역의 38도선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제8연대는 6·25전쟁 발발 불과 5일 전인 1950년 6월 20일 제2연대에 38도선 경계진지를 인계하고 서울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되었고, 이동한 지 이틀 만에 전쟁을 맞았다. 이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8연대 제3대대는 김포 북방의 운유산과 한강방어선의 영등포, 신길동 일대에서 북한군 제6, 제4사단의 공격을 저지했다. 연대는 진천, 청주 북방, 보은 일대에서 북한군 제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으나, 전투력이 소진되어 7월 23일 해체되었다.
8월 20일 연대는 제3·5연대와 함께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9월 2일 북한군의 공세(9월 공세)가 시작되자 연대는 제6사단에 배속되어 영천 북방의 신녕지역 전투에 투입되었고, 9월 5일부터는 영천전투에 투입되었다. 연대는 적 제15사단과 12일까지 뺏고 뺏기는 혈전 끝에 적의 돌파를 저지하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충주를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고, 김화-평강-율리를 거쳐 10월 18일 승호리 일대에서 대동강을 건너 김일성대학과 모란봉 일대로 진격했다. 연대는 20일 저항하는 북한군 제17, 제32사단의 잔적을 소탕하고 평양을 탈환했다. 이로써 연대는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가 되었다.
10월 29일 북진을 계속한 연대는 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했다. 연대는 11월 1일 공격을 개시했으나, 중공군의 역습에 밀려 후퇴하여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 일대를 점령하여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연대는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맞이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비호산을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상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싸우다 11월 1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성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0-ㅇ-00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